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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뉴스


작성일 : 15-05-08 14:45
[이코노믹리뷰] 섬과 짜장면과 사람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7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3035 [12]

그 사건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라도라는 섬에 가서 사내를 만난 것부터가 프리랜서로 밥벌이하며, 개 세 마리를 키우며, 시 쓰며, 가끔 연애나 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 같던 필자의 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는데, 그것이 불가항력적인 운명 같아도 어쨌거나 반 이상은 필자의 마음과 의지가 결정한 일이었다. 나머지 반은 사내의 마음과 사내의 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우리 둘의 마음과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으나, 우리 둘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크나큰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이어서 그다지 발설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인지라 이 에세이 칼럼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건너뛰어도 될까, 계속 고민해왔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당도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우리를 설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간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짜장면집 사연을 결국 풀어놓기로 한다.

합천에서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필자는 좀 신나 있었다. 결혼은 새롭고 신선한 일이었고, 오롯이 필자를 위한 일을 계획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평범한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딴딴딴따’에 맞춰 등장하는 여느 결혼식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 속에서도 필자가 꾀할 수 있는, 필자만의 결혼식을 위한 잔머리 굴림에 자아도취 중이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캄보디아-라오스 배낭여행 일정을 짜면서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여행을 가기 위해 결혼을 결정한 것처럼 생각될 지경이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필자는 보기와는 다르게 소심한 구석이 많아 혼자서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 그래도 운이 좋아서 필자의 돈을 들이지 않는 단체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는데, 그럴 때마다 ‘필자 맘대로 여행’을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었다. 이제는 둘이라서 외로울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그 하나가 남자라서 위험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필자는 정말 마음껏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라도에서 걸려온 사내의 전화 한 통.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사내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걱정이 가득했다. 사내의 가게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방금 해양경찰 배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것이다. 쇠파이프로 집단구타를 당한 것인데, 가해자는 마을 이장이 연루된 한 무리였다. 사내는 직원을 따라 응급실로 갔고, 마라도에 남아 있던 사내의 친구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해경 배가 떠나고 마을로 돌아와 보니, 이장 무리들이 자기네 가게 앞 파라솔 밑에 앉아 희희덕거리며 맥주를 마시고 있더란다. 사내는 필자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며 “이거는 나를 때린 거다. 내 대신 가가 맞은 거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내막은 이러했다.

마라도는 일찍이 짜장면으로 유명해진 섬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 생긴 일명 ‘원조 집’과 그 뒤에 당시 유명 개그맨이 만든 짜장면 체인점을 연 이장집이 양대 짜장면집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마라도는 이장이 왕이었다. 이장이 모든 걸 결정했고, 이장이 모든 걸 가졌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이장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 김 씨 집안이 마라도의 양대 토박이였고, 이 두 집안에서 번갈아가며 이장을 해먹었다. 일명 ‘원조 집’은 부산이 고향인 교회 목사가 들어와 차린 집인데, 이후에는 마라도에서 나서 마라도 분교를 다닌 목사의 아들이 운영을 했음에도 그 역시 외지 사람, 일명 ‘육지 것’에 불과했으니, 그가 토박이에게 당한 괴로움도 상당했다고 한다. 더구나 목사인 아버지의 인맥 덕분에 많은 언론에 보도가 되어 그 동네에서는 가장 돈을 잘 버는 집이 되면서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이장도 돈 좀 벌어보려고 짜장면집을 차린 것인데, 브랜드의 유명세 덕분에 돈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소스와 면 육 개월 치를 한꺼번에 받아 냉장고에 쟁여두고 데우기만 해서 파니, 전문 요리사도 필요 없었고, 무엇보다 이문이 엄청났던 것이다. 메뉴도 단 한 가지, 짜장면뿐이었다. 그래서 마라도에서는 중국집이라고 하지 않고 다들 ‘짜장면집’이라고 불렀다. 우리 가게 이름 끝에 ‘짜장면집’이 붙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돈 좀 벌어보려고 짜장면집을 차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장님이 차리신 밥상에 밥숟가락을 얹는 건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하던 횟집이나 민박집이나 물질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사내는 고기 잡아 회 팔고 낚시 손님들과 어울리며 돈 벌어도 솔찬하니, 짜장면엔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그 두 짜장면집의 싸움을 익히 보아온 터라 그 틈에 끼이고 싶은 마음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러다 이제 곧 결혼도 해야 하고, 15여 년을 섬에 처박혀 살다 뭍으로 나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마당에 그 마지막 성수기인 여름을 놓치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밀면이었다. 사내는 부산의 유명한 밀면집에서 5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육수 비법을 전수받고, 냉면 기계를 사서 마라도로 돌아왔다. 장사는 아주 잘 되었다. 일손이 딸려 마침 부산에서 건너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젊은 남자 하나를 직원으로 들였다. 이렇게 여름을 잘 나고 나면 뭍으로 가서 횟집 차릴 밑천은 충분히 마련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 무렵, 사내의 귀에 전해진,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는 기가 찼다. 자기한테 허락도 안 받고 면 장사를 한다며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란 바로 이장이다. 짜장면이든 밀면이든 똑같은 면 장사니, 마라도에선 누구든 이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고 자빠졌네. 이장은 사내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것을 손보지 않으면 유사한 상황이 줄을 이을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빌미를 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이장 무리를 비껴 살았다. 라인을 타는 일은 애초에 사내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육지 것’이라면 이주한 지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 발언권도 투표권도 주지 않는 섬에서 사내는 일찌감치 섬 속의 섬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했다. 섬 속의 섬들끼리 어울리면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다. 그러다 이장의 주파수에 걸려든 것이 그 직원이었다. 사내의 가게에 들어오기 전, 이장 형네 노점상에서 일을 하면서 사장과 여러 번 싸우다 결국 잘리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운 털이 박힐 대로 박힌 그가 하필이면 사내 가게의 직원이 되었고, 이장은 버르장머리 없는 놈 걸리면 죽는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사건이 나던 날, 사내는 마지막 배가 떠나고 장사를 마무리한 뒤 머리를 식힐 겸 기원정사엘 갔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 친구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달려가서 보니 반죽음 상태였고, 그를 발견한 사람은 마라도 해경 초소 부소장이었다.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사내가 기원정사로 떠나자마자 이장의 똘마니로 불리던 한 사람이 그 직원을 불러내어 전동차에 태우고 갔다고 한다. 그 전동차가 평소에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마침 부소장이 멀리서 보았고, 경찰의 본능인지 어쩐지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부소장이 얼마 뒤에 숲속으로 따라 들어가 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쇠파이프로 그 친구를 두드려 패고 있다가 부소장의 등장으로 멈추었는데, 그 길지 않은 시간에도 그는 이미 피를 철철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분명 이렇게 범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발각되었는데도, 그 후 그들에 대한 처벌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직원은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발뒤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제주의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사내는 모든 일을 접고 병간호를 했다. 직원이 부모님이 있는 부산의 병원으로 옮긴 뒤 사내가 마라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름은 저만치 가버리고 말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횟집 문을 열었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직원이 없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맞았을 테고, 부소장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맞다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라도는 작디작은 섬이고, 섬에서의 죽음은 대부분 사고사로 기록된다. 그냥 그뿐이다. 조류가 센 바다 속에서 사체라도 찾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고,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현행범으로 발각이 되었으니 게다가 현직 경찰 간부에게 발각이 되었으니,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신속하고 엄중하게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용했던 쇠파이프는 그 자리에서 증거물로 수거되지 않았고, 며칠 뒤 찾아온 형사들에게 가해자들이 건네준 것은 각목 한 개가 전부였다. 가해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한 명만이 책임자격으로 수감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마라도는 이장이 왕이고, 경찰이라고 해서 왕의 자리 위에 오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경찰일수록 갇힌 섬 속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실세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하여 몇 달에 걸친 수사와 재판 끝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절대 합의를 해주지 않겠다고, 무조건 가해자들에게 콩밥 먹여 세상 무서운 줄 알게 하겠다고 약속했던 직원이 큰돈을 받고 합의를 해줌으로써 수감된 한 명도 풀려났다.

사내는 허탈했다. 약속을 어기고 합의를 해준 직원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돈이 궁한 사람의 결정을 무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해자들은 더욱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는데, 집행유예 기간을 의식해서인지 물리적 폭력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지 그들을 벌하고 싶었다. 결국 사내는 짜장면을 택했다. 금기를 깨고 싶었다. 15여 년을 그저 조용히 좋아하는 낚시나 실컷 하고, 좋아하는 술이나 실컷 마시며 밥 굶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 족했고, 그들이 애면글면 걱정하는 그 어떤 이권이라든지 돈이라든지 애초에 관심이 없었으니,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마찰이 없었다. 다만 라인을 타기 위해 살살거리지도 굽신거리지도 않았고, 그저 먼 산 보듯 지나치며 살았으니, 그들이 봤을 땐 적잖이 아니꼬운 놈일 수는 있었다. 그랬던 사내가 정면 승부를 결정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니놈들이 밟은 지렁이가 용은 못 되도 이무기쯤은 된다는 것을 보여주마’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합천에서 그 동안의 사태를 쭉 전해 들으며 사내의 심정에 감정이입이 되어갔다. 결혼을 해도 되는 건지, 할 수나 있는 건지 고민도 되었고, 자꾸만 앞날이 안개에 포위당하는 형국이어서 불안감도 커져갔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내를 전적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나 역시 더러운 꼴은 못 보고 사는 성미다. 힘에 꿀리지 않고 불의를 피하지 않으려는 사내가 내 남자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가. 그런 놈들 때문에 결혼이라는 큰 일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어서 우리는 계획대로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사내가 “당분간은 짜장면집을 해야 되지 싶은데……, 지금은 내가 마라도를 떠나기 어렵지 싶은데……, 짜장면 장사를 혼자서는 좀 하기 어렵지 않겠나 싶은데…….”라며 주섬주섬 꺼내는 말을 듣고 있다가, 결국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그래요, 그럼 일단은 내가 마라도로 들어갈게요.” 그렇게 그해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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