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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뉴스


작성일 : 15-04-09 10:39
[헤럴드경제]소록도 섬마을에도 ‘사람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4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406000243&md=2015040609443… [10]
[헤럴드경제(고흥)=김아미 기자]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시인 ‘문둥이’ (1936)-

고사리 장마’로 내내 젖은 주말이었습니다. 4월 초ㆍ중순에 안개비처럼 내리는 짧은 우기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다지요. 이 비 그치고 꽃 떨어지면 고사리 끊으러 갈 채비 해야겠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이 꽃비에 취하는 4월, 소록도 섬마을에도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주말, 전라남도 고흥에 위치한 땅 끝 마을이자 한센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소록도를 다녀왔는데요. 고흥만 방조제에서부터 8㎞ 가까이 되는 하얀 벚꽃길과 도로변 가득한 접(겹)동백 꽃잎들이 외딴섬 소록도에도 봄이 만개했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국립소록도병원벽화. 한센인들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내륙에서 섬까지 이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것을 2009년 소록대교가 놓아지면서 자동차로 쉽게 이동이 가능해졌습니다. 해설사와 동행한 소록도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꽃비에 취한 상춘객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렸던 ‘서러운 문둥이들의 땅’, 소록도에는 일제에 의한 인권 유린의 역사가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소록도 이야기=1천160m 길이의 대교를 건너 소록도에 닿았습니다. 7개의 한센인 마을로 이뤄진 소록도는 ‘작은 사슴’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작은 아기 사슴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립소록도병원의 벽화. 한 방문객이 한센인들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소록도는 1916년 2월 일제가 전국의 나병환자들을 강제 수용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내보내고 ‘소록도자혜의원’을 설립한 데서 시작했습니다. 1960년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개칭했다가 1968년 ‘국립나병원’으로 한 차례 이름을 바꾼 후 1982년부터는 다시 국립소록도병원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이 곳은 하나의 소국가와 같은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가 다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대교를 들어가는 입구에는 철조망이 둘러져 있는데, 이 철조망을 기점으로 직원들과 환자들의 거주지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38선보다도 먼저 둘러쳐진 철조망인 셈입니다. 
벽화에 새겨진 한센인들의 초상화.

소록도에 거주하고 있는 580여명 한센인들의 평균 연령은 76세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60대 이상이고, 9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들도 많다네요.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1947년 6천254명으로 입원환자 수가 정점을 찍었다가 1985년 2천89명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2000년 835명의 환자가 입소한 이후로 최근 10년 넘게는 입원 환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못 먹어서 면역력이 약했던 시절에나 걸렸던 병인지라 지금에 와서는 발병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대부분 고령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이곳에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에 관련한 이야기는 해송숲 우거진 ‘수탄장(愁嘆場)’에 서려 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는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가 있는 보육소에 격리해 생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뉘어지는 경계선 도로에서 만날 수 있게 했습니다. 유전병이 아니기 때문에 한센인들의 자식들은 모두 정상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행여 바람결에라도 병균이 옮아붙을까 부모와 자식이 도로 양 옆으로 갈라선 채 눈으로만 대화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국립소록도병원 벽화들.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한센인의 자식들은 더 이상 이곳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한센인 자식을 둔 부모 역시 이곳을 찾지 않는다네요. 그 이유는 면회를 오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제출하고 검문소 세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면회를 하고 나면 어느 집 누구가 ‘문둥병’에 걸렸는지 단박에 소문이 나기 때문이랍니다. 천륜을 억지로 끊고 사는 이들의 가슴 속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듯 했습니다.

▶피울음으로 붉게 물든 벽돌…눈물을 먹고 자란 정원…=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이동 시인 ‘단종대’-
검시실.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들의 저주받은 땅이 된 건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입니다. 일본이 전쟁을 치르면서 소록도병원도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전쟁 비용으로 헌납했습니다. 여기엔 당연히 한센인들의 노동력이 투입됐죠. 그 피울음 맺힌 곳이 바로 ‘벽돌공장’입니다. 소록도에 있는 500여개 건물은 모두 부역에 동원된 한센인들이 문드러진 손발로 만든 것들입니다. 이들은 식지도 않은 벽돌을 가마에서 꺼내느라 가뜩이나 감각이 없는 손에 더 큰 화상을 입기도 했고, 병세는 더욱 악화되기 일쑤였습니다.

고된 노동과 병세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체벌이 가해졌습니다. 중앙정원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붉은 벽돌로 지은 두 채의 일본식 건물이 있는데, 한 곳은 검시실이고 한곳은 감금실입니다. 모두 1930년대 중반에 지어진 곳으로, 인권 유린이 자행된 곳입니다. 두 건물은 각각 등록문화재 66호와 6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검시실은 한센인이 죽은 후 시체를 해부하던 곳이고, 감금실은 한센인을 불법적으로 감금했던 곳입니다. 특히 H자 형태의 감금실은 철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 방마다 변기가 배치돼 있는, 형무소 같은 곳입니다. 
감금실.

감금실에서는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온갖 징벌이 이뤄진 곳이었습니다.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저항하던 환자들, 말 그대로 원장 말을 듣지 않은 이들을 데려다 가두고, 먹이지 않고, 때리며 가학행위를 했던 곳입니다. 이곳을 출감할 때는 여지 없이 검시실에서 정관절제를 당했다고 합니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제 4대 수호 원장 시절, 그의 명을 거역한 죄로 감금실에 갇혔다 풀려나면서 단종수술을 받았던 이동 시인의 ‘단종대’라는 시가 여전히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검시실 해부대에도 학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모든 사망환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가 이뤄졌습니다. 병원균을 조사하고 분석한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그 시절 관동군 731부대가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됐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록도 환자들은 “3번 죽는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첫째, 한센병 발병을 들었을때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둘째, 죽은 후 시신을 해부당하면서 다시 죽고, 셋째, 화장으로 불에 태워져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원장이 시신해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기도를 했답니다. “주여, 부디 일요일에 죽게 해주소서”라고 말입니다. 
벽돌공장이 있던 곳.

중앙정원은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볼거리입니다. 황금편백나무, 당종려나무, 나한송, 금목서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심어진 일본식 조경입니다. 특히 가지를 접목시킨 형태 때문에 나무 기둥이 여러 줄기로 갈라진 모습들이 이채롭습니다. 해설사가 말합니다. “소록도 한센인들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떨어진 침을 먹고 자란 나무들”이라고요. 정원에도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소록도에는 방생한 사슴 2마리가 번성해 현재 350여마리에 이른다는데, 이 사슴들이 저녁무렵에는 정원으로 내려와 조경을 해치기도 한다는군요. 백사슴도 3마리나 된답니다. 
한센인들이 피와 땀으로 만든 소록도 정원.

▶소록도 섬마을에 사람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국립소록도병원 입구에는 가로 110m에 달하는 옹벽 벽화가 눈길을 끕니다. 한센인들의 초상화가 부조로 새겨진 곳입니다. 소록도 사람들은 벽화 속에서만큼은 각기 다른 얼굴로 너무나 활짝 웃고 있습니다.

소록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이 벽화 프로젝트는 지난 2013년 4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전남 고흥군 남포미술관이 주축이 돼 이뤄졌습니다. 예술가들의 재능기부 프로젝트에 익명의 후원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힘을 더한겁니다. 한 한센인 할머니는 이 벽화를 계기로 60년만에 처음으로 거울속의 자기 얼굴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의 모습 아래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소록도가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도 최근 도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록도에 모든 사회가 관심 갖도록 의미있는 기획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어떤 기획이 추진될지 궁금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음을, 봄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소록도에도 ‘사람 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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